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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죽음을 기억하라'가 버거울 때, 나는 '탄생'을 기억하기로 했다

Life

by Amor_H 2025. 9. 2. 22:0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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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메멘토 모리(Memento Mori)', "죽음을 기억하라"는 오래된 명언이 있습니다. 영화나 책, 강연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이 문장은, 삶의 끝을 떠올림으로써 바로 오늘, 이 순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죠. 영화 <죽은 시인들의 사회>의 "카르페 디엠(Carpe Diem, 현재를 즐겨라)"처럼, 많은 분의 마음속에 자리한 말이기도 할 겁니다.

 

죽음을 기억하려다, 현재를 '죽이게' 된 순간

그런데 저에게 이 명언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. 걱정, 두려움, 분노 같은 감정이 극에 달할 때면 '아, 정말 죽을 것 같다'는 생각이 들었죠. 삶이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, 매 순간을 '죽음 바로 앞'처럼 느끼며 잔뜩 긴장했습니다.

 

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"너 죽고 나 죽자!"는 식의 비극적인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곤 했습니다. 한동안 회사에서 특정 동료와의 갈등으로, 제 삶은 마치 일시정지된 비극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.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경계 태세로 하루하루를 버텼고, 부정적인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죠. 결국 저는 '현재를 즐기는' 게 아니라 '현재를 죽이고' 있었습니다.

 

템플스테이, 마음챙김, 명상, 운동, 필사, 산책.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. 잠시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, 출근하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얼어붙었습니다. 아무 일도 없는데 저절로 시작되는 긴장감과 경계심 앞에 저는 당혹스럽기만 했습니다.

 

어째서 현재를 살게 한다는 저 오래된 명언이, 오히려 저의 현재를 앗아가게 된 걸까요?

 

내 이름, '아모르'가 부끄러워질 때

저는 스스로에게 '아모르(Amor)'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.

 

"운명을 사랑하라"는 뜻의 '아모르 파티(Amor Fati)'에서 따온 이름입니다.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, 제 삶의 기쁨과 슬픔, 성공과 고난까지 모든 것을 긍정하고 사랑하고 싶었거든요.

 

하지만 자동 발사되는 긴장과 경계심 앞에, '아모르'라는 이름은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습니다. 필사적으로 그 이름 뒤로 숨어 들어갔죠. 어쩌면 그때가, 그 지독한 긴장감과 경계심마저 긍정하고 사랑해보라는, 제 이름이 던져준 진짜 '운명의 시간'이었을지도 모릅니다.

 

그렇게 현재를 죽이던 시절, 저는 고모가 되었습니다.

 

모든 것을 바꾼 한 가지, '탄생'을 마주하다

 

이제 막 세상에 온 작은 생명, 조카를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.

조심스럽게 마주친 눈, 꼬물거리는 입과 볼, 펼칠까 말까 망설이며 제 심장처럼 뛰던 작은 주먹.

짧은 면회 시간이었지만, 제 마음은 무수한 가슴 떨림으로 가득 찼습니다.

 

그리고 그 벅찬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온 순간, 깨달았습니다. 그동안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던, 현재를 죽이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. 그토록 떨쳐내려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들, 긴장과 불안에 떨던 제 자신의 모습이, 이상하게도 제법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.

'존재만으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.'

조카를 보며 느낀 이 당연한 사실이, 제게는 놀라운 전환점이 되어주었습니다.

 

죽음의 반대편, '탄생'을 기억하기


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.

'그토록 나를 긴장시키던 그 사람도, 한때는 저렇게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아기였겠지.'

 



그가 살아온 겹겹이 쌓인 세월, 그 세월의 겉면에 가려진 시작을 상상해보았습니다. 쉽게 판단하고 두려워했던 제 모습이 아려왔습니다. 그 사람의 놀라운 '탄생'과 그가 겪어온 '역사'를 떠올리자, 저를 옭아매던 긴장과 두려움이 비눗방울처럼 '톡' 하고 터져버렸습니다.

 

두려움이 있던 자리에는 호기심이 들어섰습니다.

'이 생각들은 어떻게 왔을까? 어떤 경험들이 쌓여 있을까? 그 사람 안의 아가는 잘 있을까?'

 

점차 출근길이 편안해졌습니다. 가끔은 팽팽한 회의 중에 엉뚱한 상상력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. 아기 몸에 동료들의 얼굴이 합성된 모습을 떠올리는 건 저만의 비밀이지만요.

 

 

좋은 문장과 신념으로 나를 지키려 해도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면, 이제는 그 반대편을 가만히 들여다보려 합니다.

'죽음을 기억하라'가 힘겨울 땐, '탄생을 기억하라'고 말을 건네보는 것처럼요.

 

결국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귀한 연결고리이니까요. 그 사실을 기억하며,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합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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